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낭송 : 허무항이)
 박일만  | 2008·04·18 08:29 | HIT : 1,571 | VOTE : 144 |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72]

      마음의 수수밭  글 / 천양희 (목소리 허무항이)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 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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