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만 시집 『살어리랏다』를 읽다 / 서정임
 박일만  | 2022·03·11 06:17 | HIT : 177 | VOTE : 37 |
박일만 시집 『살어리랏다』를 읽다 / 서정임


배추를 묶으며
  -육십령 44

박일만

가을이
밭 모서리에 쪼그려 앉아
조각 볕을 쬐는 날
널브러진 팔을 가지런히 묶어준다
맨 바깥 잎은 엄마, 아빠의 팔
안쪽 몇 잎은 언니, 오빠의 팔
그 안쪽은 셋째, 넷째의 팔
식구들이 팔을 들어 겹겹이 감싸주자
막내가 포대기에 싸인 듯 중심에서 웃는다
따뜻한 표정, 막내는
이제 속이 꽉 차도록 자랄 것이다
찬바람 막아주고, 서릿발 대신 맞고
방패막이가 된 넓적한 팔들
양팔을 서로 겯고 체온을 모으는 혈족들
한 울타리 속에서
온 가족이 밥 먹고 사는 중이다
찬 기운 스며드는 땅속에 기둥 박고
팔이란 팔 죄다 벌리고 있던 배추 한 포기
가슴께를 단정히 매주자
신공법으로 지은
잘 생긴 집 같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 나 홀로 밥 먹고 나 홀로 술 마시고 나 홀로 사는 나홀로족이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2인 이상이어야 주문받던 배달음식도 기꺼이 제공하는 곳이 있는 편리함 속에서, 평생 혼자 살겠다는 비혼주의와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이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늘어가고 있다. 이전 세대와 다른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급속한 발달에 따른, 가족이란 중심체가 흔들리고 있음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체득하는 과정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으로, 이미 이러한 삭막함이 야기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매스컴을 통해 빠르게 들려오는 그 소식들은 안타까움과 걱정, 슬픔 분노를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느끼게 한다.
박일만 시인의 시집『살어리랏다』는 이러한 인식에서 우리 시대에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이다. 고향에 대한 시편들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습득하고 실행해야 할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환기창이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 속에 살았다. 하지만 비록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도 산다는 것은 좋았다. 내 가족이 이웃이고, 이웃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없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육십령 44라는 부제가 붙은 ‘배추를 묶으며'라는 이러한 이전 세대가 보여준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와 정서를 잘 압축하고 있다. 단순히 배추 한 포기, 한 잎에 불과한 것이지만 팔과 팔이라는 의인화를 통해 한 가족이 서로를 위하는 모습으로 치환한 이 시는, 가족이 있어야 하는 이유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찬바람 막아주고, 서릿발 대신 맞고 방패막이가 된 넓적한 팔들’이 있는 그런 화목함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렇듯 타인을 위한 깊이 있는 이해와 배려를 할 줄 아는 정서는 ‘양팔을 서로 겯고 체온을 모으는 혈족들’이 있는 ‘울타리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쉽게 읽히면서도 따뜻한 이 시가 전하는 의미가 크다(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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