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신문 <시와 함께하는 세상> - 출가 / 박일만
 박일만  | 2020·08·13 10:10 | HIT : 4 | VOTE : 0 |
이창하 시인의 <시와 함께하는 세상>
(경남도민신문 2020.08.12.)
  

출가 / 박일만


일주문까지 따라온 내외가
더 이상 들지 못하고
머리 파랗게 깎은 아들을 마주한다

여기만 넘으면 이제 피안이다

끝인사가 포옹 대신 합장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아들의 이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더 익히려고 애써 고개를 든다

뒤를 돌아보면 이제는 지상에 남는 건
무수한 연민뿐

일주문 앞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목


[감상]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수천 번의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하물며 이승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다는 것은 전생에 몇 번의 인연이 있었을까. 여기 이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 다시 속세와 성세의 경계를 두고 이별하는 장엄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그 이별의 경계지점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전적 의미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 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하며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건 속세(俗世)와 성세(聖世)의 경계지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니 인사법 또한 속가에서 잘하는 포옹은 불가능하며 성세의 방식인 합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일주문을 넘어서는 순간 나의 아들이 아닌 불가의 스님이 되는 것이므로 속가에서 부르던 이름도 부를 수 없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모든 형식이 뒤죽박죽되는 순간이다. 승가로 들어가는 사람의 처지에서야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지만, 반대편에 서있는 그 부모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어쩌면 한동안 공황 상태가 될지도 모를 만큼 충격적인 일이라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들의 이름을 두고도 이름을 부를 수 없어 고개를 들고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 뿐인 부모의 마음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더 익히려고 애써 고개를 든다/ 라는 구절에서 다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출가하는 아들의 처지에서도 일견 마음이 편하지 않기는 일반일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연민의 정인들 어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는 속가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할 때 순간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신분에서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스님이라는 신분으로 인식적인 측면에서 재탄생을 하는 처지다. 그래서 이제는 경계지점을 넘어 수행자로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지점을 사이에 두고, 속가의 안타까움과 성세의 연민이 교차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 지점을 보고 있는 듯하다. 성속을 사이에 두고 하는 이별, 그 이별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이별 노래야 고조선 때의 ‘공무도하가’나 정지상의 ‘이별’ 황진이의 ‘이별’ 그리고 김소월의 이별 등등 수없이 많은 이별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한 작품군들을 이어서 박일만 시인의 <출가>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현대판의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별가를 노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이창하 시인)
     
  경기신문 - 시와함께 하는 오늘 / <모친> - 박일만  박일만 20·03·2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