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SF 소설, 벌레로의 변형...박일만 「두타행」/ 정호 시인
 박일만  | 2019·10·20 05:18 | HIT : 5 | VOTE : 0 |
카프카의 SF 소설, 벌레로의 변형...박일만 「두타행」/ 정호 시인

  

아  래의 시는 카프카의 SF 소설 「변신」을 읽는 것 같다. 땅속에서 애벌레로 견딘 7년과 매미가 되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하는 애환이 시적화자의 아파트에 갇힌 삶과 병치된다. 아파트 베란다까지 와서 노래를 부르는 매미의 일생이나, 아파트의 주인인 시적화자의 일생이나 벌레의 삶이기는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허무한 결과다.

  

시끄럽던 우기를 견딘 몸이다
축생의 지하를 청산하고 땡볕 속에 나섰다
발자국을 총총히 새기는 애벌레
제 몸속 습기를 뽑아 길을 놓는다
세상을 짚어가는 필사의 솔기
걸친 가사도 짊어진 바랑도 없이 오직
태생의 살갗만으로 밀고 가는 길이다
산과 계곡을 버리고 혼돈의 세상에 나와
빌딩 숲에서 지하철에서 들끓는 길거리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속도를 온몸에 두르고 살았다
배를 채우고 몸에 걸치는 일에 골몰하며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
인간이기를 자처하며 살았다
몸 속 진액들이 서둘러 부패 됐다
아우성의 틈서리에서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걸친 옷보다 먼저 몸이 닳았다
몸보다 먼저 신념에 삭았다
회색 도시를 거처삼아 흙살 한 줌 없이 살았다
무성한 소음 제치고 음습한 도시 벗어나
뙤약볕에 벌건 몸으로 간다
나는 한 마리 알벌레다, 적멸은 멀다


  ― 박일만, 「두타행」 전문

  

  위의 시는 매미의 일생과 시적화자의 일생을 오버랩 기법으로 병치하고 있다.

매미는 하찮고 작은 미물이지만 정작 그 사물의 행위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보면 절박한 생존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한여름날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의 그 소란, 우리 인간을 짜증나게 한다. 그러나 매미에겐 생존과 가문의 존속이 달린 절체절명의 사건이다. 땅위를 걷지도 뛰지도 못한 채 7년여를 땅속에서만 살다 날개를 달았다. 인간들이야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건말건 신나게 한 곡조 뽑는다. 매달린 나무마다 노래방이다. 마음 내키면 앵콜 앵콜, 십여 곡도 좋다.

   그러나 이 소란은 짝짓기를 위한 경연이다. 고작 일주일 남짓의 시한부 인생이 아닌가. 이 땅에 자손만대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제 짝 하나 구하기 위한 세레나데를 구구절절 부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가왕쟁탈전이다.

    
   두타(頭陀)는 산과 들로 떠돌면서 온갖 고행으로 불도를 닦는 일이다. 매미의 한살이도 인간으로 치면 두타이다. 시 「두타행」에서 매미는 화자 자신이다. 이제는 직장에서 은퇴한 화자가 하릴없이 낮잠에 들려 할 때, 혹은 야밤에 잠 못 들어 뒤척일 때 매미가 울어댄다. 얼마나 짜증스러울까. 할 수만 있다면 매미를 때려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스스로 매미가 되어 두타행에 든다. 그가 살아온 길, 그리고 살아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혼돈의 세상에 나와’ ‘배를 채우고 몸에 걸치는 일에 골몰하며/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 인간이기를 자처하며 살’아가는 화자. ‘아우성의 틈서리에서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걸친 옷보다 먼저 몸이 닳았다/ 몸보다 먼저 신념에 삭았다’고 토로한다. ‘무성한 소음 제치고 음습한 도시 벗어나/ 뙤약볕에 벌건 몸으로’ 가는 화자는 ‘한 마리 알벌레’일 뿐이다. 여전히 ‘적멸은 멀다’고 고뇌한다.(정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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