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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주역 / 공광규
 박일만  | 2014·02·14 09:27 | HIT : 816 | VOTE : 189 |
신경주역 / 공광규


열차가 떠나려면 삼십 분도 남지 않았는데
울산에서 달려온 시골 여자동창이 엄나무장아찌와 제피나무 잎 장아찌와 가을무로
담은 장아찌를 들고 와서 안겨준다
사찰 음식을 배워서 만든 거란다
황급히 보따리를 챙겨들고 나오느라 물에 불어 굵고 언 손이다
손가락에 덜 아문 상처가 있고
바른 지 오래된 매니큐어가 벗겨져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보인다
절에서 설법을 한다는 남편을 둔 동창의 센 머리카락 뒤로
시골 대나무 숲에 껑충하게 서서 넓은 이파리를 펄럭이던 엄나무가 보이고
천식이 심했던 아버지와 고추장 비빔밥에 산초기름을 쳐서 먹던 시골 밥상이 생각
난다
기침에 좋으니 무장아찌를 챙겨 먹으라는 동창의 말투가 어머니를 닮았다
동창의 나이도 안 됐을 때 혼자가 된 어머니가 생각나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려면 두세 해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는 몸이 헐렁해져 여자동창을 봐도 여자라는 생각이 안 든다
플랫폼에서 차표를 찢거나 열차를 따라 올라타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장아찌가 담긴 보따리를 안고 오면서
희고 깨끗한 칼라가 달린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서 있던 풋풋한 여자 중학생을 생각
하다가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는 시골 장독들과
잘 숙성된 동창의 몸과 맘과 말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풋 하고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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