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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의 작품 몇편
 박일만  | 2013·09·26 16:29 | HIT : 807 | VOTE : 139 |
별 닦는 나무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자목련 립스틱

  
불광산 장안사 화단 자목련나무가
가지마다 자주색 립스틱을 밀어올렸다  

가까운 옥매나무에서 먼 뒷산 신갈나무 숲까지
열심히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다  

그러나 립스틱이 묻지 않는 것이
자목련나무는 많이 속상한가보다  

봄바람을 핑계 삼아
립스틱 밀어올린 팔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자목련나무의 오랜 공덕은 헛되지 않아서
가을쯤의 입술 모양의 뒷산은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서 있을 것이다
  

낙원동
  

평생 낙원에 도착할 가망 없는 인생들이
포장마차에서 술병을 굴린다  

검은 저녁 포장도로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붉은 비닐포장 꽃에서
잉잉거리며 일벌 인생을 수정하고 있다  

꽃 한번 피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열매도 보람도 없이 저물어가는 간이의자 인생을
술병을 바퀴 삼아 굴리는 사이
포장마차는 달을 바퀴 삼아 은하수 이쪽까지 굴러와 있다  

소주를 주유하고
안주접시를 바퀴로 갈아 끼우고
술국에 수저를 넣어 함께 노를 젓고
젓가락을 돛대로 세워 핏대를 올려도 제자리인 인생  

포장마차가 불을 끄자
죽은 꽃에서 비틀비틀 접힌 몸을 펴고 나온 일벌들이
술에 젖은 몸을 다시 접어 택시에 담는다
  

어떤 시위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나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 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금광석
  

구봉 금광에 다니던 아버지가
갱도에서 시커먼 돌에 흰 차돌이 박힌 금광석을 숨겨가지고 와서는
석유등잔불 아래 내놓고
이모네 식구와 우리 식구가 둘러앉아 구경을 한 적이 있다  

등잔 심지를 올리고
간드레 불꽃을 더 밝게 하고
아무리 돌을 쳐다봐도 도대체 금이라곤 보이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치석처럼 끼인 불순물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호기심이 가득한 스무개의 눈들을 바라보며
뭐라고 설명을 하셨는데 기억이 없다  

어른의 눈은 침침해서 안 보이고 아이의 눈은 몰라서 안 보인다고 했던가?
아니다,
돌을 깨는 망치와 정련하는 기계가 없으면
금광석도 잡석이라고 한 것 같다  

나도 너에게 부서지고 가열될 때만 금광석일 것이다
  

파문의 바퀴
  

비 오는 히로시마 경교천  

수면 위에 빗방울이 둥근 파문을 굴리고 있다
파문의 바퀴들이 톱니처럼 물고 강을 바다로 싣고 가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빗물은 저 파문의 바퀴가 달린 마차를 타고 와서는
수면 위에서 한생을 지우며 마감하는지도 모른다  

풀숲에 바퀴를 버린 우마차처럼
폐차장에 바퀴를 버린 자동차처럼 한생의 파문을 지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에 일던 파문을 지우고 떠난
파문당한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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