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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피다, 지다
 박일만  | 2006·05·19 08:08 | HIT : 7,473 | VOTE : 781 |
모퉁이에서 피다, 지다

                        
검정 칠을 하고도 희게 웃는 사내,
목발 세워 둔 한 쪽 발을 길게 밖으로 걸쳤다
희망을 켜 놓은 듯 백열등 밝혀 둔 좁은 공간
피곤한 구두를 벗어 수선을 맡기는 저녁 무렵
골목은 늘 객관적이다
바닥까지 검정물든 손을 탁,탁 치며, 이제 그만 해야죠
그만둬야죠,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초로의 사내
십 수 년인 듯 굵어진 손마디가 고집스럽다
내 구두는 이제 항해를 끝낸 폐선처럼 어둡다
좀처럼 광택이 살아나지 못할 거죽으로 찌그러져
능동적이지 못한 내 성품을 비웃듯 손 빠른 사내
해진 일상을 기우고 봉긋한 광택을 생산 한다
허리춤을 꾸욱 찌르고 견고한 실로 혈관을 심고
벌겋게 온몸을 지지고 닦아 환하게 빛을 복사해 낸다
속내를 보이진 않지만 손에 친친 광목을 감으며 말하겠지
자, 다시 한 번 가면을 쓰고 살아 보세요
그래도 세상은 적당히 가리면 살만 하잖아요
구석에 앉아 왁스에 취해 밖을 바라본다
이 거리에서 오래오래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과 나
그만 둬야지, 이제 정말 쉬어야지 하면서도
끝끝내 꽃피고 싶은 무화과나무 척박하게 웃는 거리 모퉁이
천천히 천천히 아주 객관적으로 어두워 간다


<시인시각 2006.여름호>
<2006 전국문예대전 우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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