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박일만  | 2024·05·19 01:55 | HIT : 52 | VOTE : 0 |
꽃샘  / 박일만


신께서는 초지일관 집정하고 계시는 거라
아득한 옛날부터,
지구를 빚어 우주에 던져 놓고
이리저리 굴리며 색칠하고 배치하고
공기놀이하고 계시는 거라
산천을, 물줄기를, 바람과 나무, 새와 꽃을 앉히고
맨 끝자리에 인간을,
수십 억 년을 떠도는 지구
욕망덩어리 인간이 제멋대로 살고 있는 거라
참으로 가관인 돌덩이,
인간 욕심은 넝쿨처럼 자라 세상을 뒤덮고
점점 혼란과 피폐와 아우성으로 끓는 거라
배를 까뒤집고 누운 산천, 목을 꺾고 뒹구는 나무,
냄새나는 바람 줄기까지
물은 피 맛으로, 새들은 노랫말을 까먹고
종내에는 꽃들이 통곡하며 모가지를 내밀 무렵,
신께서는 여전히 통제하고 계시는 거라
지구를 심판대에 올려놓고
꽃들의 옆구리를 찔러 얼굴을 찡그리게 한 거라
말미암아 인간들은 추위를 더 감내해야 하고
꽃은 저만치에서
오던 걸음을 멈추고 서성대고 있는 거라
잠시, 그것인거라

<상징학연구소, 2024. 여름호>
     
  숲의 정령들  박일만 24·05·1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