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박일만  | 2024·05·17 12:59 | HIT : 43 | VOTE : 1 |
디아스포라 / 박일만


불현듯 뿌리 뽑혀
낯선 땅 척박한 벌판에 버려져
갈대와 함께 서걱대며 울었다

짐승과 벌레들이 뒹굴며 싸우는
피 묻은 이국땅에 내던져진 몸들
땅속 흐르는 물소리 찾아 두더지처럼
토굴을 짓고 살았다
몸은 부서지고 뼛속에선 짠물이 흘러나왔다

고려인 강제 이주명령!

밟히고 차이고
육신은 골병들었으나
신념은 오히려 활활 싹이 터 올랐다
영혼을 털어 넣고 땅을 일구며 살았다

싹은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었고
말소리는 열매로 영글어
조국처럼 머릿속에 단호하게 맺혔다

태생을 먹고 자란 말
젖줄을 휘감듯 뇌리에 흐르는 말
잊지 않으려고 되뇌고 되뇌었다

강제 차단된 말을 몰래 꺼내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랑 춤사위로 거친 땅을 일구고
굶주림을 차라리 낭만으로 견디며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았다

고려인 강제이주 명령서
그 정체 모를 활자를 해독하며
끈질긴 근성으로 살아내고
붉은 핏줄도 무수히 키워내서
서러운 이국땅을 굵게 넓게 다져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기관원 몰래 부르던 숱한 나날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아팠던 숱한 세월

뿌리를 움켜쥐고
갈대밭에 광대한 둥지를 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연면한 강이 되었다


<시산맥, 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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