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는 자전거 / 박일만
아이와 줄달음치던 자전거
제 몸을 기둥에 매놓고 젖는다
아이는 비를 피해 집으로 가고
공터에는 함께 놀아줄 누구도 없다
젖은 몸을 털지 않고
맺히는 물방울을 가득 달고 서있는 자전거
집으로 간 아이를 궁금해 하다가
지나가는 바람에 물방울을 털기도 하면서,
아이는 잠들었을까
지금쯤 나를 생각하겠지 여기다가
추운 잠 속으로 빠져드는 자전거
은빛 바퀴살을 뽐내며
속도를 자랑하던 몸짓을 거두고
지치지 않던 시간을 끌어 모아
가만히 구부러진 등허리로 품어보는 자전거
아이는 흐린 날에도 뜨는 별이고
아이는 한 시대 내내 커갈 것이고
자전거는 저 혼자 생이 낡아갈 것이다
흠뻑 젖은 시대를 입고
가만히 바퀴를 돌려보는 자전거
<서정시학, 202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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