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 - 자화상
 박일만  | 2021·09·27 11:25 | HIT : 35 | VOTE : 4 |
곡두 / 박일만
– 자화상


1
발밑은 허방이다
사내 하나 허우적댄다  
큰물에 빠져 바쁘게 몸 놀림 한다
세상은 큰 물,
파문을 일으키며 수없이 잠겼다 떠오른다
발끝을 헛디딜 때마다 목이 잘렸다 이어졌다
숨 막히는 생, 흉통을 달고 살았다
전력을 다해 헤엄쳤으나 지상에 있다는 낙원에는 닿을 수 없는,
첨벙거릴수록 물고기들만 달아나 사내는 배를 곯았다

2
계곡을 밑바탕 삼아 살았다
깊을수록 올라가야 할 능선은 높았다
멀리 돌아야 겨우 능선 입구를 찾을 수 있을 뿐
삶은 늘 아뜩하고
사내는 헛발을 디딜까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한치 앞을 모를 깊이에서 계곡이 아가리를 벌리고 소리쳤다

3
거품이 넘쳐나는 세상
물은 깊고 하늘은 높고
솟아날 구멍을 찾으며 일생이 갔다
얼굴 한번 제대로 비춰볼 틈도 없이 물은 흘러갔다
계곡이 튀기는 통증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완곡한 일상들이 헛헛한 신음 소리를 내며 오갔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사내는 제 가슴에다 골을 파며 살았다
손에는 빈 삽 한 자루만 남았을 뿐
허벅지를 부풀려가며 고단하게 걸어왔다
울음을 견딜 때마다 일찍 죽은 아버지가 눈앞에 있었다

4
등성이에 올라 젖은 얼굴을 하늘에 비춰보았다
뼈마디가 욱신거릴 때마다 발걸음을 더디게 했던 날들이
새가 되고 싶다고 아우성 이었다
오를수록 계곡은 깊고 구름은 무겁게 몸을 휘감았고
뒤돌아보는 길은 아득히 지워지고
내려 갈 길도 막막한 능선에서
석양이 붉게 울었다

<시와편견, 2021.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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