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박일만  | 2021·09·23 15:09 | HIT : 41 | VOTE : 4 |
동창회 / 박일만


희대의 감염병 코로나를 피해
얼굴 못 봤으니 회비납부 가부를 묻자고
SNS에 동창회가 열렸다
다수가 면제에 투표하고
몇몇은 반응 없이 동조하는 분위기인데
기어코 두세 놈은 납부 표를 디밀었다
다수의 표정이 썰렁하게 떠 다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표시는 자유라고 우기겠지만
그들의 속내가 쓰리거나 말거나
나는 면제에 감히 투표했다
그럼에도 또 한 녀석 납부찬성 투표…

그 심통머리 거울을 보는 듯 뻔했다
어쩌다 근황이나 묻자고 전화 넣으면
상대의 안부는 뒷전이고
돈 자랑 외제차 자랑에 거품 물던 녀석들,
나는 집에 금송아지 키운다, 아재 식 농을 치려다 그만두고
돈다발 같은 책이 몇 수레 있다는 말도 삭혔던 일
그 마저도 부끄러운 심정이다

찬반양론 사이에서 눈치 보던 녀석 하나가
회의가 끝날 무렵 들어와
헤헤거리며 어정쩡한 의사표시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납부’에 점을 찍었을 녀석이
‘면제’ 분위기에 은근슬쩍 올라 탄 것이다
오호라, 너도 잘 늙어가고 있구나

간단히 치른 회의가
긴 여운을 남기고 종료됐다


<시와 정신, 2021.가을호>


     
  복수  박일만 21·09·23 37
  텃밭  박일만 21·09·11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