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박일만  | 2021·09·11 07:13 | HIT : 52 | VOTE : 7 |
텃밭 / 박일만


묵혀 두었던 밭이
버려진 쪽배처럼 측은하다
허허벌판이라는 바다에 고립돼
흔들리는 뱃전에는 폐허만 가득하다

잡초 뽑아내고 냄새풍기는 퇴비 뿌리고
두꺼운 겨울을 갈아엎고 밭둑을 다독였다
흙을 반듯하게 펴주니 밭이 기지개를 켜고 웃었다
분바른 미소년처럼 매끄러운 얼굴, 

두둑을 돋우고
바느질 하듯 한 땀 한 땀 씨앗을 심었다
밭은 비로소 잘 수리된 한 척의 배가 되었다
햇살을 받아 이마가 반짝이는,

출항이다
닻을 올린 쪽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제 저 배는 봄이라는 돛을 달고
여름이라는 작물을 싣고
가을이라는 열매를 익히며 푸른 몸으로 항해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라는 항구에 닿겠지
사람살이와 내력이 닮았다

햇빛이 전신에 퍼지자 뱃전에서
씨앗들이 움틀 대며 솟아 날 것 같다

풍덩! 풍덩!
푸르러가는 계절을 헤치고 흘러가는 텃밭
봄을 나침반 삼아,


<맑은누리문학, 2021.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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