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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박일만  | 2020·11·19 07:13 | HIT : 10 | VOTE : 0 |
배려 / 박일만


화분 중심에 천리향을 심은 지 몇 해
나무가 점점 중심에서 밀려났다
산사태로 기슭이 쓸려나간 듯
한 쪽 공간이 휑하니 비었다
연유를 몰라 작심하고 살펴보니
그랬구나!
작년에 먹고 버린 감씨가 구석에서 싹을 틔웠다
건사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몸집 키우고,
옮겨 심으려고 흙을 파내려니 밑이 실하다
뿌리끼리 얽히지 않고 한 쪽을 차지했다
천리향은 몸 틔우는 감나무 싹을 내치지 않고
한자리 뚝 떼어 준 것이었는데
제 몸을 가장자리로 밀며 옮겨 앉은 것인데
시도 때도 없이 사부작대는 동물들도 영역을 다투느라
오줌 누고 몸 비비며 철조망을 치는데
한갓 발도 없는 나무가 뿌리로 걸어 간 것이었다
천리향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뿌리로도 천리까지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어둡고 비좁은 땅속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자리를 나눠 살아내고 있었다


<시에, 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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