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배달 91 -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박일만  | 2022·12·05 10:06 | HIT : 142 | VOTE : 21 |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저녁때’의 경남지역 방언


【너스레】
사람은 누구나 눈(目)이 여러 개였으면 하는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느끼는 때입니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몸도 마음도 여러 개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만큼 사랑 앞에서 절실해지고 분주해지는 몸과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 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가을 논배미에 메뚜기처럼 무수히 많은 눈동자를 지니고 사랑을 살피고 싶은 것입니다. 배추밭을 찾아가던 흰나비도 가던 길을 멈추고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는 박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박꽃 잎은 나비의 날개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죠. 거기에서 사랑이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은 겹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사랑이 찾아올 것을 예감합니다. 겹눈은 ‘눈썰미’가 좋아서 사랑을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가을 내내 사랑의 등에 업혀 지내고 싶은 마음입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살어리랏다(육십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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