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배달 87 - 나는 밤 두 시에도 버스를 기다린다 / 황학주
 박일만  | 2022·08·15 21:09 | HIT : 47 | VOTE : 10 |
나는 밤 두 시에도 버스를 기다린다 / 황학주


버스를 기다린다
밤 두 시 비로소 불을 끄고
아주 조그맣게 남아서

한쪽으로 쓸쓸한 꽃 같은 기도를
오래오래 가슴에 앉히며
내 빈 방의 구겨진 길로 달려오는
환한 차창의 버스를 기다린다

풀뿌리 밑 같은 제일 낮은 데를
홀로 적시고 있는
이 진창, 이렇게 어둠 많은 데를
그리운 이여 찾아오고 있는지
밤 두 시 늦은 버스를 기다리면

묵묵히 견디고 있는
풀씨 파묻힌 마음 언저리
말이 되지 못한 채

사랑이 외로워지고
때론 모래를 등에 업은 듯
세월의 허전한 자취들이 무거워
세상을 다 헤매는 듯하다

해명되지 않은
삶의 틈서리에 앉아
이 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자의
뒷등을 따뜻이 덮어줄 이여

흙 같은 살 한 줌의
그리움이 깊고 부드러우면
이런 시간엔 반드시 어디쯤에서
내 사랑을 기다리게 된다
아직은 가질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랑


【너스레】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남자는 밤늦도록 기다리는 일이 습관처럼 돼버렸습니다. 짝사랑일까요? 아니면 떠나간 사랑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가질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은 참 애처롭습니다. 밤 두시가 넘어 새벽이 다가오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하염없이 길 끝, 먼 곳을 바라봅니다. 정류장엔 이미 불이 꺼졌습니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까맣게 앉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환하게 내릴 것을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버스는 쉬이 오지 않습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처럼 진창 같은 마음은 또 없을 겁니다. 이 남자를 뒤에서 살포시 안아 등을 데워줄 사람은 어디쯤 오시는지요?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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