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배달 86 - 내외 / 윤성학
 박일만  | 2022·07·11 06:47 | HIT : 61 | VOTE : 6 |
내외 /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가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너스레】
갑작스런 요의는 사람을 당황케 합니다. 장소도 마땅치 않고, 화장실도 찾을 수 없을 때는 더욱 난감합니다. 남자와 달리 여자의 경우에는 더더욱 난처해집니다. 남자의 경우 전봇대 하나만큼 가릴 수 있는 엄폐물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이 정도의 가림으로는 해결이 안됩니다. 결국 아무도 오지 않는 숲속일지라도 바위처럼 큼지막한 가림막이 있어야 안심입니다. 그러면서도 보호자인 남자를 가까이 오지도, 멀리 가지도 말라고 당부합니다. 남자는 궁금해 하고 여자는 부끄럽고, 그런 간격을 유지합니다. 그만큼의 거리,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지 않을 거리,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존경의 간격일 것입니다. 사랑의 간격은 참 오묘합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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