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 배달 80 - 월동越冬 / 박일만
 박일만  | 2022·02·05 16:08 | HIT : 181 | VOTE : 87 |
월동越冬 / 박일만
          

김장을 거든답시고
서툰 솜씨로 무를 쓸다가
씀벅, 손가락을 도렸다
살점 한 뭉텅이 쓸려나갔다
나는 아프다고 핏대를 세워가며 투덜댔으나
왈, 주부들은 다반사라고 일축 당했다
그깟 피 몇 방울 흘린다고 죽냐?
죽으면 썩어질 몸 뭐 그리 중하다고!
뒤통수를 치는 말에
나는 투정의 수위를 한층 높였지만
약발은 안 먹히고
내 주리만 심하게 틀리었다
저며진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나는 종일 아프다고 떼를 쓰고
김장이 대수냐고 심통을 부린 하루
제풀에 지쳐 한숨 자고 일어나
재차 불편한 심기에 불을 댕기려는데
흠! 흠! 새살 돋는다는 연고와
하얗고 푹신한 붕대가 감겨 있었다


【너스레】
어렸을 적에는 김장김치가 겨울 반찬의 주류였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에 100~200포기를 담그는 예는 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김장을 어머니 혼자서 어떻게 담그셨을까 의아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밤을 새워가며, 허리를 주물러가며 하셨을 겁니다. 요즘에는 김장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양 손으로 손가락을 겨우 한두 번 폈다 접었다 하며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래도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속을 채우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고 힘이 듭니다. 그것을 알기에 좀 거들다가 사달이 난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 손을 베었습니다. 쓰리고 아팠습니다. 가뜩이나 뜻하지 않은 김장 노동에 몸도 마음도 피로한 상태였습니다. 겸사겸사 투정을 부렸지요. 그러다가 피곤에 지쳐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손가락에 감긴 푹신한 붕대를 목격했습니다. 뾰족했던 마음이 수그러졌습니다. 인생이 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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