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72 - 명사산 / 이근배
 박일만  | 2021·08·17 13:41 | HIT : 121 | VOTE : 70 |
명사산鳴沙山 / 이근배


살빛도 그렇지만
젖가슴이며 허리며 잠자는 시늉으로 누워 있는
여자의 알몸 같은 명사산을 만났다
- 모래가 운다고?
- 바람이 우는 것이 아니라고?
저 달달 볶는 햇볕에 타다 못해
떡가루처럼 빠여진 모래가
산을 이루기까지 지구는
몇 광년이나 헛바퀴를 돌았는가
방울소리를 내는 쌍봉낙타를 타고
끄덕끄덕 여자의 사타구니 모양을 한
오아시스 월아천月牙泉을 바라보다가
(제길 모래가 우는 게 아니라
여자가 울고 있던 것이여)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굶주린 알몸의 여자, 명사산을
기진맥진하도록 울리느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너스레】
모래사막과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월아천)를 보고 여자의 알몸을 상상해냈습니다. 해학과 더불어 관능미가 철철 넘쳐흐릅니다. 시인은 중국 돈황에 있는 <명사산>을 체험하고 기발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탄성라고도 할 수 있지요. 모래로 이루어진 산을 누워있는 여자의 알몸으로, 월아천을 여자의 중심부로 치환해 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막체험 자체를 여자와 한바탕 정사를 치르는 일로 그려 놨습니다. 그리고는 한편의 짧고 격한 드라마로 연출해냈습니다. 시인의 사물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관찰력이자 심상입니다. 사막을 보며 누워있는 여자를 연상하다니, 그것도 알몸을, 시인들의 상상력은 가히 무한합니다. 모름지기 자연은 인간을 이처럼 놀라움에 빠지게도 합니다. 시인이나 예술가들은 모든 사물을 <사랑의 눈>으로 유심히 관찰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명의식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이 시처럼 서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막의 능선을 알몸의 곡선으로 보는 동시에 낙타의 쌍봉을 유방으로 그려놓고 모래바람을 여자가 우는 소리 즉, 신음으로 포착했으며 ‘굶주린 여자’를 발목(=몸)이 푹푹 빠지도록 만족시켜주기 위해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기발한 이미지를 창조해 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막을 걷다보면 모래가 발목까지 차오르고 두 다리가 모래 속에 푹푹 빠지기 때문에 보통 때 와는 달리 힘을 더 들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정사장면의 힌트를 얻은 것이지요. 하지만 전혀 음흉스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순결하고 신성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탄에서 발로된 것일 겁니다. 감히 누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적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이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었고 시와 인생을 낳게 했습니다. 육감적이지만 자연과 여성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된 화끈한 장면입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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