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70 - 모란의 연 / 류시화
 박일만  | 2021·07·14 18:07 | HIT : 132 | VOTE : 70 |

모란의 연緣 / 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이 모란이 안다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너스레】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까지 갔다가 얼굴은 못보고 모란꽃만 보고 돌아갑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서성이다가 모란이 다 져 떨어진 꽃잎만 보고 돌아갑니다. 안타깝습니다. 그의 심장은 점점 모란꽃잎을 닮아 갑니다. 붉고 가냘프게 변해갑니다. 꽃나무 밑에 있는 돌은 차갑습니다. 돌 위에 떨어진 심장도 얼마나 차갑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던 봄날 같은 시절은 무엇인가 모를 작은 갈등으로 인해 멀어졌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모란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스무날하고도 몇 날을 더 피었다 집니다. 기다림입니다. 전생에서도 이승에서도 모란이 피면 인연은 그렇게 불면으로 봄을 만나고 이별 합니다. 조용히 피었다가 조용히 지는 사랑입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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