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69 - 히말라야에서 쓴 연애편지 / 김인자
 박일만  | 2021·06·30 12:49 | HIT : 119 | VOTE : 69 |
히말라야에서 쓴 연애편지 / 김인자


바람이 창 밖에서 경전을 읽는 밤 어느 이국의 남자가 지친 몸을 문지르며 자고 갔을 이불 속에 엎드려 지도를 따라 일기를 쓰고 있을 때 먼 곳의 당신도 책장을 넘기고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잠 안 온다 안 온다하며 내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릴 때면 당신은 왜 이렇게 발가락이 간지러운거야 라며 읽던 책장을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가려운 발가락을 긁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빛바랜 유리거울 귀퉁이에 걸려있는 파리똥이 다닥다닥 얼굴에도 붙고 코에도 붙어있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아니라 무한정 미래로 뻗어 가는 푸른 나무임을 믿는 나는 이렇게 시작되는 연애 편지를 아주 먼 세상의 끝점에 엎드려 쓰고 싶어 떠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내일은 더 높이 오를 것입니다 멀고 높을수록 더 가까워지는 당신께 히말라야 바람이 읽다가 간 경전 한 구절 동봉합니다 그럼 부디-

【너스레】
이국에 와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장에서 이국의 남자들이 덮고 잤을 이불의 냄새를 맡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 이불을 덮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책을 읽던 일을 떠올리면서 편지를 씁니다. 일기와 책으로 연결 지은 인연은 곧이어 편지를 쓰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발가락과 한 손을 등장시켜서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백이지만요. 사랑은 그만큼 크고 넓고 푸른 상상을 하도록 해 줍니다. 더 멀리 가고 더 높이 오르면서 세상 끝으로 가는 것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가깝게 가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그니까요. 사랑은 ‘무한정 미래로 뻗어 가는 푸른 나무’입니다. 잘 자랄 것이라고 믿습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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