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68 - 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손택수
 박일만  | 2021·06·14 06:47 | HIT : 126 | VOTE : 58 |

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 손택수


자기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딱딱하게 이어지던 대화 끝에
여자후배의 입술 사이로 무심코
튀어나온 자기, 어
여자후배는 잠시 당황하다
들고 온 보험서류를 내밀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한순간 잔뜩 긴장하고 듣던 나를
맥없이 무장해제 시켜버린 자기,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무 때고
꽃잎에 이슬이 매달리듯
혀끝에 자기라는 말이 촉촉이 매달려 있는가
주책이지 뭐야, 한번은 어머니하고 얘기할 때도 그랬어
꽃집 앞에 내다 논 화분을 보고도
자기, 참 예쁘다
중얼거리다가 혼자서 얼마나 무안했게
나는 망설이던 보험을 들기로 한다
그것도 아주 종신보험을 들기로 한다
자기, 사랑에 빠진 말 속에


【너스레】
‘자기’라는 말은 참 많은 경우에 쓰이고 있습니다. 자기라는 말은 본래 ‘자기자신’을 뜻합니다. 자기계발, 자기개발, 자기경험 등.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3인칭 대명사로도 쓰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더라’,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라’등등. 현장에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지요. 그러나 언제부턴가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을 일컫는 말로 쓰여 왔습니다. 더 나아가 연인을 부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의 등장인물들도 나름대로 멋쩍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 여자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자기’라는 말이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른 수습을 하긴 했지만 서로는 당황을 했을 ‘자기’라는 말. 그러나 후배 여자는 참 다정다감한 성격이거나 사교성이 많은 사람이고, 남자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실수를 하고 허둥대는 후배의 마음을 헤아리고 종신보험을 들어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상대방의 작은 말실수에도 인생을 깊이 응찰하며 흔쾌히 보험을 들어주는 남자, 그의 마음은 아마도 사랑을 초월한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해와  같은 마음, 그랬을 것입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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