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54 - 너희 사랑 / 신경림
 박일만  | 2020·11·14 07:35 | HIT : 8 | VOTE : 0 |
너희 사랑 / 신경림
- 누이를 위하여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헤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 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 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주집과 생맥주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 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너스레】
민주주의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절, 화염병을 던지고, 최루탄을 맞고, 돌을 던지고, 쫓겨 다니며 교회 담벼락에, 골목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쓰고, 그리고 자취방 구석에서 소주와 노가리를 먹으며 밤이 새도록 머리를 맞대 시대를 논하고, 가난하고 억압된 나라가 싫고, 민주주의는 멀고, 찬 마룻바닥에서 푸른 죄수복을 입고 수형생활을 하고, 그렇게 싸워 온 결실이 단비가 되어, 훈풍이 되어, 민주주의가 찾아 온 것입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시대에 젊은이들의 고뇌, 민주주의를 갈망한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을 누이를 통해 그렸습니다. 여기에서 피어난 누이의 사랑은 곧 민주주의 입니다. 누이는 시인만의 여동생이 아니라 우리시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가족을 의미합니다. 나약한듯하지만 내심이 강한 누이를 출연시켜서 시퍼렇게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노래했습니다. 민주화 투쟁 당시 시로서‘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직접 외친 시인도 많았습니다. 이 시는 그렇게 태동하였습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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