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52 - 망종 / 고영민
 박일만  | 2020·10·21 06:24 | HIT : 10 | VOTE : 1 |
망종芒種 / 고영민


당신을 땅에 묻고 와 내리 사흘 밤낮을 잤네
일어나 반나절을 울고
다시 또 사흘 밤낮을 잤네  

하릴없이 마당을 쓸고
더덕밭을 매고
뒷목을 긁고
흙 묻은 손바닥을 일없이 들여다보다
또 손톱 하나를 뽑고  

당신을 생각하는 이 계절은 붉거나 노랗거나
혹은 그 가운데쯤의
빛깔
업듯 새끼사슴을 안고
꽃나무를 나서는 향기처럼 신발을 끌며
마을 입구까지 길게 걸어갔다 왔네

인중이 긴 하늘
선반엔 들기름 한 병


【너스레】
사전적 의미로 망종은 “24절기의 하나.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이맘때가 되면 보리는 익어 먹게 되고 모를 심게 된다” 라고 합니다. 산야에 녹음이 짙어갈 무렵이란 뜻일 겁니다. 그 와중에 시인은 상(喪)을 당하고 며칠을 앓고 있습니다.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잠자고, 울고 또 잠을 잡니다. 산야에 번지는 녹음처럼 끝없이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는 하릴없이 마당을 쓸고 밭을 매고 신발을 끌며 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고자 합니다. 이승에서의 이별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법일 겁니다. 생의 허무함을 스스로 달래려는 나름대로의 방편들 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늘을 올려다보다 자신의 얼굴에서 긴 인중을 발견함과 동시에 선반에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 논 들기름에 생각이 가 닿습니다. 길면 오래 산다는 자신의 인중과 짧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힘들여 짜 남겨 둔 들기름 사이에서 시인은 더욱 생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이별의 아픔을 견디는 과정에서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는 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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