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51 - 단풍나무 빤스 / 손택수
 박일만  | 2020·10·06 07:01 | HIT : 14 | VOTE : 1 |
단풍나무 빤스 / 손택수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너스레】
베란다에 널어둔 아내의 팬티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습니다. 하필이면 사람들 왕래가 잦은 아파트 화단, 단풍나무에 걸렸습니다. 아시다시피 단풍나무는 주로 빨간 색입니다. 볼을 붉혔습니다. 그것을 본 지아비인 시인은 누가 볼세라 황급히 내려가 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척 걸쳐진 아내의 팬티를 나무에게서 가져오는 것을‘벗긴다’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옛일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집니다. 첫날밤에 아내의 팬티를 벗기던 상상을 합니다. 시인의 상상력이 환상적입니다. 그러던 중 팬티에 난 구멍을 발견합니다. 팬티가 뭉쳐져 있을 때는 몰랐던 구멍을 단풍나무 위에 펼쳐져 있을 때 알게 된 것.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살아오면서 좋은 팬티 한 장 제때에 사주지 못한 시인의 가난한 삶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 가난한 삶을 신혼 시절과의 연상 작용을 통해 순수하고 가슴 찡한 사연을 찾아냈습니다. 탁월한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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