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50 -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박일만  | 2020·09·16 06:27 | HIT : 8 | VOTE : 0 |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너스레】
무량사는 충남 부여의 만수산(萬壽山) 남쪽 기슭에 있는 절입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하지요. 무량하다는 뜻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 또는 잴 수 없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시간이나 공간, 수량 또는 부처님의 공덕이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여 무한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이 말을 무심결에 나타낸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아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지요. 농담처럼 뱉은 말 같지만 내심으로는 어느 척도로도 잴 수 없는 깊이로 아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절처럼 목탁이 되었다가 풍경이 되었다가 꽃살문 스치는 고운 바람소리처럼 많은 것을 포용하고 감싸주는 사람입니다. 가정 행복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한 아내에게 ‘한 채의 절’이라 불러도 무방한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존경심까지 묻어 있는 사랑, 그 사랑의 단맛이 도랑물처럼 졸졸 잘도 흐르고 있습니다. 무량합니다 그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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