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배달 49 - 매월여인숙 / 권선희
 박일만  | 2020·08·28 06:13 | HIT : 10 | VOTE : 1 |
매월여인숙 / 권선희


나 오늘 기필코
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라네
눈 감은 채
푸르고 깊은 바다
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
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
작은 창 가득
하얗게 성에가 끼면
웃풍 가장 즐거운 갈피에 맨살 끼우고
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와
투둘투둘 비늘 털며
긴 밤을 보낼라네

【너스레】
항구의 노동자들에게 여인숙은 휴식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빛바랜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여인숙, 흉어기가 오면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잠시 멈추고 선창가에서 꿍쳐둔 돈을 풀어 술판을 벌이거나 노름을 했다는 뉴스를 듣기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늦은 밤이면 인근 다방에 모여 잡담을 나누거나 여인숙에 들어 회포를 풀기도 했다는, 지금은 들어보기 힘든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몸에 가득 쌓인 피로를 풀며 흉어기에도 푸르고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듯 살아갔던 겁니다.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편이었죠. 이 시는 어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남성적 입장에서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 만큼 행간 곳곳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다방이라는 서민들의 공간이 북적대던 시절과 바닷가의 삶이 잘 어우러진 장면들. 지나간 시대와 공간과 당대의 주인공들을 모셔다가 잘 빚어 발효시킨 왕년의 추억 한토막입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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