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을 부인하다 / 이해리
 박일만  | 2022·03·02 19:55 | HIT : 76 | VOTE : 43 |
성선설을 부인하다 / 이해리


TV화면으로
탁란하는 뻐꾸기를 보았다
개개비알들 속에 슬그머니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리는 어미 뻐꾸기
개개비보다 먼저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다섯 개나 되는 개개비알을 하나씩
둥지 바깥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양수도 덜 마른 민둥머리 어린 것이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갓난 것이
남의 삶에 가하는 살생이 놀랍다
조금의 가책도 없이
태어나자마자 남을 해쳐야 제가 산다는 본능에 충실한
저 새의 울음에 사람들이 속는다면
내가 신봉해왔던 성선설을 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야한다
악착같이, 온몸으로, 몇 번이나, 거듭 실수하면서
기어이 실행하고 마는 살의의 집념
푸른 수풀은 잠시 몸을 떨었을 뿐
텅 빈 둥지에서 문득 깨닫게 될
어미 개개비의 눈을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간 세상에 그런 일 없었던가
성선설이란 속임수 앞에 너무 아프게
당하기만 하는 그런 사람
성선설을 내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날
나도 모르게 내 입안에선 혓바늘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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