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 고두현
 박일만  | 2023·08·12 16:18 | HIT : 49 | VOTE : 23 |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 고두현


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가기 시작한다
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
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
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
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
내 앞을 질러간다

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
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
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
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 틈까지

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
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
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
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갈래갈래 절레절레

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
앞질러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
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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