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시간 / 황규관
 박일만  | 2023·03·04 04:02 | HIT : 88 | VOTE : 27 |
무너지는 시간 / 황규관


길을 넓히겠다고, 길가에 말없이
한 이십 년은 서 있었음 직한 나무를
포클레인이 찍어내고 있다
나무는 굉음의 힘에 휘청대면서도
제 사는 데를 떠나지 않겠다지만
달팽이도 떠났고 황조롱이도 떠났고
제비꽃은 마을 전체가 사라졌음을
뿌리가 찢어지는 찰나에 깨달을 것이다
이제 침묵은 어디에서 빛날 것인가
넓어진 길을 따라 더 많은 소음과
더 깊어진 비애와 더 무거워진
가난이 흐르겠지만
나무가 뽑힌 자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길을 넓히겠다고, 초등학교 운동장 가까이까지
중장비 소리가 바짝 다가왔는데
나무는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제 대지를 후두둑 뜯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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