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 문숙
 박일만  | 2021·08·03 06:20 | HIT : 15 | VOTE : 6 |
사월 / 문숙


너라는 집에 깃든지 이십 몇 년
티격태격 살아오는 동안 곳곳에 균열이 생겨
나를 감싸던 온기도 예전 같지 않다
집 안은 바깥보다 낮은 온도를 기록하고
내가 설정한 희망 온도는 너에게 닿지 못한 채
하얀 벽면에 내용 없는 숫자로만 박혀 있다
서로에게 냉랭한 기류만이 오가는 동안
온몸에 한기가 들고 신열이 올라
나는 꽃 피는 계절에 내복을 꺼내 입는다
구석에서는 가르릉  상처 입은 짐승의 소리가
밤새도록 공회전을 거듭하고
무조건 너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날이 밝는다
창밖에서는 라일락이 독기를 뿜으며 벽을 기어오르고
아래층에서는 물기가 바깥으로 번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내가 앉은 자리 어딘가 구멍이 크게 난 모양이다
이곳을 고치면 저곳이 새고
이 나이에 리모델링은 손익계산에 맞지가 않지
내복 입은 몸에 꽃무늬 원피스를 촌스럽게 차려입고
불온이 만발해서 낡은 집을 유유히 빠져나오는데
"엄마 어디가요? 밥 주세요”
꽃샘바람이 꽃대를 후려치듯 헉,
내딛던 발걸음을 오므린다
여자의 혁명은 늘 아이들 밥 때문에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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