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슬쩍 / 김수우
 박일만  | 2021·02·03 21:03 | HIT : 11 | VOTE : 1 |
슬쩍슬쩍 / 김수우


오십이 훌쩍 넘었으니
초월을 흉내 내야지 병명 정도 죽음 정도는
가시내들 고무줄 놀듯 발춤 추듯
슬쩍, 시간 저편으로 건너가야지
수행 삼아 곰팡이밥 쏟듯 자존심도 버리는데

봄비,
흐린 점선이 아니라 푸른 실선으로 다가오지
목련나무 비에 젖어 걸어오니
아차, 삶이 당기는 팽팽함이 두려워지지
뿌리쳐야 할 생의 손목이 저렇게 아름답다니

슬쩍, 육조단경을 뒤적거리다
요가수트라도 슬쩍 성경도 슬쩍
슬쩍슬쩍 훔친 것들이 많은데

아슬아슬한 모든 슬쩍이
나를 누룩뱀으로 만들어 은근슬쩍, 무덤 저편을 허락할 것인가
보폭 넓은 유목의 영혼이라도
슬쩍슬쩍은 절대 불가능할지 모르지
고무줄은 무릎이 아니라 머리 위에서 가파르니

파산한 투수投手의 마지막 흰 공처럼
망각도 몰락도 장렬할라나
푸른 실선이 아니라 시퍼런 벼랑으로 다가오는
봄비
팽팽한, 솟구치는, 서슬 선, 저 손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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